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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 영화보기 전 필독! 사전지식 7가지 + 원작 책 추천

by 흰돌 2023. 8. 16.

  미국 물리학자인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인생을 그린 영화인 '오펜하이머'가 15일 국내에서 개봉했습니다. 영화계의 거장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제작한 영화로 더욱 화제가 된 이 영화는 이미 미국 등에서 지난달 개봉과 동시에 영화계에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으며 관객들의 후기도 매우 좋은 편으로, 아직 안 보셨다면 꼭 한번 관람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추가로 실존 인물과 관련된 사전 지식을 확인해 보시고 간다면 영화의 재미는 두 배 그 이상이 될 것입니다.

 

영화 오펜하이머 포스터
영화 오펜하이머 공식 포스터

 

오펜하이머, Who are you?

1. 과학천재 + 언어천재

2. 뉴욕보다 멕시코를 사랑했다

3. 유대인이지만 힌두교에 심취한 사람

4. 아인슈타인과 비슷하지만 달랐다

5. 애연가(담배에 살고 담배에 죽음)

6. 노벨상 후보에 3번 올랐지만, 수상은 못했다

7. '오펜하이머' 영화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전 영화는 '혹평' 대잔치

8. 오펜하이머 영화 원작 책 추천

 

과학천재 + 언어천재

  1904년 4월 22일 부유한 독일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오펜하이머는 어릴 때부터 특출 난 천재성을 보였다고 합니다. 할아버지에게 선물 받은 광석 세트가 계기가 되어 7살 때부터 광물의 결정 구조 및 빛의 편광과의 상호작용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덕에 12세에는 오펜하이머가 어린이인 줄 모른 채 서신을 주고받던 뉴욕의 광물학클럽 회원이 오펜하이머를 세미나 강연자로 초빙한 에피소드도 있다고 하네요.

 

  오펜하이머는 또한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라틴어, 그리스어, 네덜란드어, 산스크리트어까지 총 7개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으며, 시 쓰기를 즐겼다고 합니다.

 

 

뉴욕보다 뉴멕시코를 사랑했다

  뉴욕 출신인 그가 생전에 가장 사랑하는 두 가지로 물리학과 뉴멕시코주를 꼽았다고 하는데, 특히 유년 시절 여행한 뉴멕시코의 황량하고 광활한 풍경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합니다. '맨해튼 프로젝트'가 뉴멕시코주에 본부를 꾸린 것이 우연이 아니었던 셈 인 것이죠.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이름은 미국의 2차 대전 참전 후 기반시설 건설 및 무기생산 시설 구축 등을 위하여 과학자 및 공학자들을 대거 모으게 된 육군 공병대의 연구 시설 중 상당수가 뉴욕 맨해튼 컬럼비아대에 있었던 데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맨해튼에서 개발 자체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계획 초기에 맨해튼에서 초기 연구가 이루어져 그 이후에도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암호명을 사용하게 된 것이라고 하네요.

 

유대인이지만 힌두교에 심취한 사람

  오펜하이머는 유대인이었으나 유대교를 맹신하는 신자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산스크리트어와 힌두교에 심취해 인도 문학 등에 대한 경외심을 자주 표현했으며, 하버드대 학부생 시절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며 힌두교 철학에 빠져들었습니다.

 

  결국  그가 전공한 물리학 분야인 양자역학과 우주 창조와 기원을 고찰하는 힌두교가 일맥상통하여 그토록 심취하게 된 원인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또한 원폭 실험에 성공한 뒤에는 "나는 이제 죽음이며,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는 말로 자책했다고 하는데 이 문구는 힌두교 경전인 바가바드기타에 나오는 어구라고 합니다.

 

아인슈타인과 비슷하지만 달랐다

  오펜하이머는 전 세계 사람들이 가장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과학자인 아인슈타인과 1920년대 독일 괴팅겐 대학에서 만나게 됩니다. 아인슈타인은 맨해튼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독일의 나치보다 더 빨리 원자폭탄을 개발해야 한다며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건의했다고 하죠.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은 대부분의 사안에 비슷한 견해를 보였지만 말년에 닥친 매카시즘(반공산주의 운동)을 대하는 태도는 달랐습니다. 오펜하이머는 정치적 공세에 당하기만 하는 수동적인 모습이었지만, 아인슈타인은 이에 반발하는 사회운동가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애연가(담배에 살고 담배에 죽음)

 

  오펜하이머는 실제 엄청난 애연가였다고 합니다. 그를 찍은 사진 대부분이 담배를 물고 있는 것이라고 하니 그의 담배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시나요.

 

  맨해튼 프로젝트를 진행할 당시 그는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몸무게가 50kg(오펜하이머의 키는 178cm이었습니다.)까지 빠졌는데도 불구하고 담배만큼은 잊지 않고 꼬박꼬박 피워댔다고 합니다.

 

  증언에 따르면 하루에 담배를 100개비 가까이 피웠다고 하며, 이러한 탓에 그가 늘 입에 물고 있던 담배 '체스터필드'는 오펜하이머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결국 골초인 그는 인후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이후 오펜하이머가 유명해지며 한때 그를 따라 담배를 피우는 것이 청년들에게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여담으로 영화에서 오펜하이머 역을 맡은 배우 킬리언 머피는 촬영당시 니코틴이 없는 허브 담배를 피웠으며, 오펜하이머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아몬드만 먹는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노벨상 후보에 3번 올랐지만, 수상은 못했다

  역사가 인정하는 최고의 물리학자였던 오펜하이머는 정작 노벨상을 받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노벨물리학상 후보에만 1945년, 1951년, 1967년까지 총 세 번이나 올라갔으나 선정된 적은 없었습니다.

 

  노벨상을 받으려면 보통 한 가지 분야에 집중하여 연구하고 그에 따른 성과를 얻어야 하는데, 오펜하이머의 경우 여러 분야에서 나온 성과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종합하여 또 다른 결론을 도출하는 것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여 노벨상이 추구하는 인물 스타일은 아니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펜하이머와 함께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동료 중 18명이나 노벨상을 수상했다고 하네요.

 

'오펜하이머' 영화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혹평받은 이전 작품들

  사실 오펜하이머의 일기를 다룬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할리우드에서 이미 두 편의 영화가 오펜하이머의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첫 번째는 롤랑 조페 감동의 '멸망의 창조(1989년)', 두 번째는 드라마다큐 '시작과 끝(1947년)'입니다.

 

  요즘처럼 CG가 발달하지 못하여 두 작품은 원폭과 관련한 어설픈 묘사 및 역사적 고증 부족 등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할리우드 외의 작품으로 1980년대 BBC가 방영한 7부작 드라마인 '오펜하이머'는 골든글로브/에미상 등 주요 드라마상 후보에 오르며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참고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평소 CG 사용을 거의 하지 않거나 최소화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오펜하이머 또한 CG 없이 영화를 제작하였다고 합니다. 핵폭발 관련 씬들이 어떤 식으로 제작되어 스크린에 보일지 기대하고 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오펜하이머 원작 책,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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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영화를 제작할 당시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평전인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라는 책을 바탕으로 하여 제작했다고 합니다. 원작을 읽고 영화를 보면 영화의 재미와 이해도가 훨씬 깊어지니, 관심 있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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